나의 이야기

카르페 디엠(Carpe diem), 파우스트 그리고 프로이센 (by Herfried Münkler)

뇌하수체 2011. 7. 27. 21:19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그의 역저 「서구의 몰락(Untergang des Abendlandes)」에서 「파우스트적인 문화(faustische Kultur)」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활동성, 결단력, 자기주장이 충만된 문화로서, 12세기 고딕시대 초기로부터 시작되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를 거쳐 국가와 경제와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에토스(Ethos)를 배태(胚胎)시켰으며 일상생활의 안락함, 눈 앞에 보이는 인상, 가까운 것, 손에 잡히는 것, 가벼운 것들을 멀리하는 대신, 보편적인 것, 영속적인 것,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것들을 추구하는 문화이다.” 영속적이고 광대무변한 것들을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문화는 현재의 쾌락에 만족했던 그리스로마시대(Antik; Classical Antiquity)의 문화와는 현저히 다르다. “그리스로마시대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과 같은 일상적 삶에 대한 만족감은 괴테나 칸트,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기독교 교회와 근대 사상가들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던 끊임없이 활동하고, 도전하고, 극복하는 존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슈펭글러의 세계사 비교 형태학에서 ‘파우스트적인 문화’는 유럽, 중동, 인도, 중국, 아메리카 등 문화가 일어났던 세계 각지에서 전개된 세 가지 발전단계 가운데 가장 나중에 형성된 문화형태이다. 파우스트적인 문화 이전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아폴론적인(apollonisch) 문화와 중세유럽적 또는 아랍적인 신비주의적인(magisch) 문화가 있었다. 세 가지 문화의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인식이 달랐으며 수학(數學), 예술, 건축, 공간에 대한 태도가 상이했고 특히 시간 및 역사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차이가 있었다. “아폴론적 문화에서 사람들은 현세만을 중시하여 삶의 근원(Woher)이나 목적(Wohin)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비주의적 문화에서는 역사를 탄생과 죽음 사이의 드라마 또는 영혼과 정신, 선과 악, 신과 악마의 대립과 투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대립과 투쟁이 구세주의 출현에 의해 일거에 해소될 것이라고 믿었다. 파우스트적 문화에서는 역사가 스스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역사의 변천은 그 목적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파우스트적인 문화에서 사람들은 역사라는 것을 오직 이렇게만 인식할 수 있었다.

 

(중략) 슈펭글러는 역사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주의(Sozialismus)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제2부에서 죽어가는 파우스트는 사회주의자이고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를 자신의 임무와 목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앞의 행운 따위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 슈펭글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물론 국제주의적 사회주의나 세계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슈팽글러는 프로이센(Preußen)을 “서구에서 가장 뒤늦게 형성된 국가”라고 보면서 프로이센적인 정신이나 프로이센적인 특징과 결부된 사회주의를 상정하고 있었다. 이런 입장에서 슈펭글러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프로이센주의와 사회주의(Preußentum und Sozialismus, 1919)」라는 책을 썼다. 나치당의 국가사회주의에 혐오감을 가졌고 히틀러를 업신여겼던 슈펭글러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한때 프로이센과 사회주의를 결부시키면서 일종의 국가사회주의에서 역사발전의 목적을 찾으려 했다. 파우스트적인 문화가 쾌락주의적 대중문명으로 변질되어 몰락하는 것을 피하려면,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말한 말인(末人, The last man, der letzte Mensch)이 되는 것을 피하려면 권위주의적인 프로이센을 파우스트적인 문화의 수호자로 삼아 독일인들의 피난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