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성로마제국의 세가(世家)들

뇌하수체 2011. 11. 4. 17:22

일본인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1901~1995) 교수가 쓴 책 「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이경덕 옮김, 다른세상, 2004)」는 ‘세가(世家)’에 관하여 매우 흥미로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마천은 「사기」에 주권자의 기록인 본기와 개인의 전기인 열전 사이에 세가라는 부분을 만들어서 봉건제후의 가계를 기술했다. 후세의 정사에는 「사기」의 틀을 따라 기전체라 부르는 말 그대로 본기와 열전이 반드시 들어 있지만 세가 항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고대의 봉건제도가 한나라 이후 완전히 붕괴되고 전자 전제의 황제정치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명목상으로는 봉건제도의 작호와 봉읍의 잔재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고대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같은 책 p.67)

 

미야자키 교수와 같은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함께 시작한 ‘가조쿠(華族)’라는 서양식 귀족제도(Peerage)를 만들 때 중국 고대 하왕조와 주왕조의 선례를 참고하여 공(公), 후(候), 백(伯), 자(子), 남(男)의 다섯 글자를 추려냈었던가 봅니다.

 

일 본

영 국

독 일

공작(公爵)

duke(duchess)

Herzog(Herzogin)

후작(侯爵)

marquess(marchioness)

Fürst(Fürstin)

백작(伯爵)

earl/count(countess)

Graf(Gräfin)

자작(子爵)

viscount(viscountess)

Vizegraf(Vizegräfin)

남작(男爵)

baron(baroness)

Freiherr/Baron(Freifrau/Baronin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 이후 정사(正史)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이른바 ‘세가’가 신성로마제국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신성로마제국 안에 독립된 주권을 가진 소국(小國)이 몇 개나 있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다만,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을 근거로 추산하면 당시 신성로마제국에는 최소한 300개가 넘는 주권국가가 있었으며 그 중 80개는 현재 베를린(Berlin) 면적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습니다. 게다가 고작 몇십 헥타르 가량의 토지를 가진 신성로마제국 “직속(直屬)의(reichsunmittelbaren)" 기사(Ritter)들이 수백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815년까지도 프로이센 서쪽지역의 쾰른(Köln)에서 북쪽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까지 여행을 하는 사람은 무려 80군데의 세관(稅關)을 경유해야 했다고 합니다.[Ulli Kulke, "Diese deutsche Kleinstaaterei war segensreich", 디벨트신문(http://www.welt.de), 2011.10.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