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벤(Schwaben)과 슈바빙(Schwabing)
슈바벤(Schwaben; Swabia)이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슈바벤 공국(Herzogtum Schwaben; Dukes of Swabia, 911–1268), 슈바벤 동맹(Schwäbischer Bund; Swabian League, 1488~1534), 신성로마제국의 슈바벤 관구(Schwäbischer Reichskreis; Swabian Circle, 1500~1808) 등 독자적인 정치적 결사체를 나타내는 표현이었지만, 통일된 정치행정적 아이덴티티가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에는 슈바벤 사투리(Schwäbische Dialekte)를 쓰는 지역을 통칭하는 정도이고, 그보다 빈번하게는 슈트트가르트(Stuttgart)나 튀빙겐(Tübingen) 등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 지방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독일 동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사투리에 비해 독일 서남부 슈바벤 지방의 사투리는 다른 지방사람들에게 역사적으로 약간 더 비호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의 슈바벤사람들은 타지역 사람들의 이런 평가를 의식하여 “우리는 표준말만 빼놓고 뭐든지 다 잘한다(Wir können alles. Außer Hochdeutsch; We can do everything—except speak Standard German)”고 되받아친다고 합니다. 실제로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벤츠자동차가 생산되고 있고 슈바벤 지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체들이 즐비합니다. 물론 동쪽의 맞수 바이에른 지방에서도 BMW자동차 등이 생산되어 독일남부의 이 두 지역은 막상막하의 경제적 솜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프로이센의 왕가 호헨촐레른 가문도 슈바벤 지역에 그 본향을 두고 있습니다.
독일의 슈바벤 지역 (사진출처 : Quahadi)
슈바벤 주라산맥(Swabian Jura, Schwäbische Alb)의 호헨촐레른성(사진출처 : Zollernalb)
부지런하고 검소했던 슈바벤 사람들은 가난을 이겨내려 도나우강(Donau; Danube)을 따라 헝가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까지 가서 정착을 했는데(이른바 Donauschwaben), 가까운 바이에른 지방 뮌헨 부근에 슈바벤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슈바빙(Schwabing)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요절한 수필가 전혜린(1934~1965)이 보았던 ‘오렌지빛 가스등’이 밤을 밝히는 뮌헨의 슈바빙, 바로 그곳입니다. 이 슈바빙과 1950년대 독일유학생 전혜린에 관하여 고종석 작가는 다음과 같이 비장(悲壯)한 어조로 적고 있습니다.
“전혜린의 짧은 삶은 ‘먼 곳을 향한 그리움’에 들려(憑)있었다. 낭만주의의 한 연료라 할 이 정서적 오리엔테이션은, 거기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 Fernweh를 곁들여, 전혜린의 글에서 거듭 표출됐다. 전혜린이 수필의 소재로 삼은 것은 대개 먼 곳이었다. 그 먼 곳은 자신이 떠나온 곳이었다. 그러니까, 먼 곳을 향한 전혜린의 그리움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Heimweh)이기도 했다. 그 먼 곳, 그가 떠나온 곳은 유럽이었다. 그의 태가 묻힌 곳은 평남 순천이었고 그가 자란 곳은 서울이었지만, 그의 마음의 고향은 서유럽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가 20대의 네 해를 보낸 독일 뮌헨이었다. 특히 뮌헨의 슈바빙 구역이었다. 뮌헨에 있을 때나 서울에 와서나, 전혜린은 이 도시의 슈바빙 구역을 지상의 이상적 공간으로 여겼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렇다고 우겼다.
뮌헨대학에 다니던 1958년 한국일보가 공모한 해외 유학생 편지에서, 전혜린은 “감수성 있는 사람들이 젊었을 때 누구나 가진 청춘과 보헴과 천재에의 꿈을 일상사로서 생활하고 있는 곳, 위(胃)보다는 두뇌가, 환상이 우선하는 곳, 이런 곳이 슈바빙인 것 같다. (중략) 이 곳에서는 아직도 가난이 수치 대신에 어떤 로맨틱을 품고 있고, 흩어진 머리는 정신적 변태가 아니라 자유를 표시한 것으로 간주되며, 면밀한 계산과 부지런한 노력 대신에 무료로 인류를 구제할 계획이 심각히 토론된다”(‘뮌헨의 몽마르트르’)고 썼다. 또 서울로 돌아와 대학 강사로 일하던 1963년에 쓴 글에서는 “나는 편견 없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슈바빙 구역에서) 본 것 같다. 정신만이 결국 문제되는 유일의 것이라는 것도. 국적도 피부색도 거기서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다. 영혼의 교통이 가능하여 정신이 일치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벗이냐 그렇지 않느냐만이 문제였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문제되지 않았다”(‘독일로 가는 길’)고도 말했다. 슈바빙 구역과 뮌헨을 향한 송가는 그의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인용 : 한국일보 2006.10.17, 「말들의 풍경」)
뮌헨 영국정원 슈바빙川(Schwabinger Bach)의 여름(사진출처 : David Kost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