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물자체(Ding an sich) 또는 누메논(Noumenon)

뇌하수체 2012. 7. 28. 18:35

“나는 칸트를 읽기 시작했는데, 『순수이성비판』에 담긴 그의 인간 마음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것을 잠시 제쳐두고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설득력이 있었고 스타일 또한 예리했다. 같은 해 그것을 두 번 읽었다. (......) 29세가 되어 나는 다시 칸트로 돌아갔는데, 이전처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순수이성비판』 외에 그의 윤리학과 미학에 대한 이론들도 시작했다. 올해 나는 칸트를 네 번째로 읽었는데, 전보다 훨씬 덜 어렵다고 느꼈다.” 인용된 글은 청조말/민국초에 활약한 중국인 학자 왕궈웨이(王國維, Wang Guowei, 1877~1927)가 1907년에 출간한 『자서(自序, Autobiological Note)』의 한 대목입니다.

 

 

 

인용된 왕궈웨이의 『자서』 해당 부분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요아힘 쿨츠(Joachim Kurtz) 교수의 논문 「칸트의 ‘물자체’에 대한 중국어 번역」(옮긴이 : 정소이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에 소개되어 있으며, 동 논문은 『개념의 번역과 창조 - 개념사로 본 동아시아 근대』(이경구 외 10인 지음, 돌베개 출판사 2012년 3월 초판 발행)에 실려 있습니다(책, pp.310~343).

 

요아힘 쿨츠 교수는 논문에서 타이베이(臺北) 대학 모종삼(牟宗三, 1909~1995) 교수를 현대 중국철학자로서 ‘무관의 제왕’ 격이라고 평가하면서, “만일 칸트가 옳다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성을 갖는 ‘중국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모종삼 교수가 ”매우 비관적인 어조의 한탄“을 했었다고 상기시킨 다음에(전게서 p.311), ”이 철학적 드라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하나의 개념, 즉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 혹은 ’누메나(noumena)‘를 중국 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추적하고자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전게서 p.312). 학술적인 ’추적‘으로서 매우 준열(峻烈)하여 한여름밤의 더위가 잠시나마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