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체(Ding an sich) 또는 누메논(Noumenon)
“나는 칸트를 읽기 시작했는데, 『순수이성비판』에 담긴 그의 인간 마음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것을 잠시 제쳐두고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설득력이 있었고 스타일 또한 예리했다. 같은 해 그것을 두 번 읽었다. (......) 29세가 되어 나는 다시 칸트로 돌아갔는데, 이전처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순수이성비판』 외에 그의 윤리학과 미학에 대한 이론들도 시작했다. 올해 나는 칸트를 네 번째로 읽었는데, 전보다 훨씬 덜 어렵다고 느꼈다.” 인용된 글은 청조말/민국초에 활약한 중국인 학자 왕궈웨이(王國維, Wang Guowei, 1877~1927)가 1907년에 출간한 『자서(自序, Autobiological Note)』의 한 대목입니다.
인용된 왕궈웨이의 『자서』 해당 부분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요아힘 쿨츠(Joachim Kurtz) 교수의 논문 「칸트의 ‘물자체’에 대한 중국어 번역」(옮긴이 : 정소이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에 소개되어 있으며, 동 논문은 『개념의 번역과 창조 - 개념사로 본 동아시아 근대』(이경구 외 10인 지음, 돌베개 출판사 2012년 3월 초판 발행)에 실려 있습니다(책, pp.310~343).
요아힘 쿨츠 교수는 논문에서 타이베이(臺北) 대학 모종삼(牟宗三, 1909~1995) 교수를 현대 중국철학자로서 ‘무관의 제왕’ 격이라고 평가하면서, “만일 칸트가 옳다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성을 갖는 ‘중국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모종삼 교수가 ”매우 비관적인 어조의 한탄“을 했었다고 상기시킨 다음에(전게서 p.311), ”이 철학적 드라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하나의 개념, 즉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 혹은 ’누메나(noumena)‘를 중국 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추적하고자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전게서 p.312). 학술적인 ’추적‘으로서 매우 준열(峻烈)하여 한여름밤의 더위가 잠시나마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