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일어의 움라우트(Umlaut)와 일본어의 훈독(訓讀)

뇌하수체 2012. 12. 15. 00:18

a, b, c, o, u, s 처럼 말끔한 형태를 가진 영어 알파벳과 달리 독일어에는 모듬 a, o, u에 두 귀딱지를 붙이는 움라우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Ä/ä, Ö/ö, Ü/ü, 이렇게 생긴 못난이들입니다. 이들 움라우트 말고도 에스체트라는 것이 있는데, 대충 ß, 이렇게 생긴 못난이입니다. 에스체트는 에스(s)를 두 번 겹쳐 쓰는 것의 대용이라고 보통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유럽쪽 언어에는 예컨대 a에 동그라미를 올려놓은 å라는 못난이 형태가 있는가 하면, 입문자들 공부하기 징글징글하게 만들기로 소문난 프랑스어에서는 e 위에 [1] é (accent aigu, 악쌍 떼귀), [2] è (accent grave, 악쌍 그하브), [3] ê (accent circonflexe, 악쌍 시르꽁플렉스), [4] ë (e trema, 트레마) 등 무려 네 종류의 못난이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합니다.

 

 

16세기까지 고급 공용어로 라틴어를 사용하다가 뒤늦게 ‘국어(國語)’를 가진 서유럽 여러나라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라틴어는 아마도 동아시아에서 한자(漢字)가 수행한 역할을 했었던가 봅니다. 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이 삼국시대 백제말(語)과 신라말(語)이 같았겠느냐 달랐겠느냐, 고구려말(語)이 지금 서울말과 같았겠느냐 달랐겠느냐, 묻기만 하고, 시원한 답은 못한 채, ‘달랐을 것이다’ 어쩌고만 하면서, 대체 그들 언어가 어떻게 달랐는지, 또는 어떻게 같았을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할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 와세다대학 사사하라 히로유키(笹原宏之) 교수가 2008년에 출간한 책, 「훈독(訓讀み)을 통해 본 일본의 한자문화와 동아시아의 한자문화」라는 책이 출간되었음을 봅니다(2012.8.27 초판발행, 이건상․인천대일본한자문화연구회 역, 도사출판 인문사).

 

 

어느 명망높은 학자의 최근 저서 제목 처럼 ‘신라가 오리진(origin)이다’ 하려면, 신라 김씨왕가가 위진남북조시대 선비족 계통으로서 A.D. 5세기경 통당(通唐)에 유리했던 언어적 조건을 과연 가졌던 것인지, 백제의 언어는 당시 왜(倭)와 어느 정도의 친족성을 가졌던 것인지, 중국 남조 양(梁)에 보낸 왜(倭) 또는 백제의 상표문(上表文)이 오늘날의 외교용 영어에 해당되는 것이었다면 대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내용 언어는 어떤 것이었는지, 경주(慶州)말이 개경(開京)말로 바뀌고 한양(漢陽)말로 과연 변화되기는 했었던 것인지 등등 이런 궁금한 사실들을 좀 다루어줘야 할 터인데, ‘신라가 오리진(origin)이다’ 하는 책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읽어보지 못하여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일본학자 사사하라 히로유키 교수의 그 책을 단숨에 읽어내기에는 일본어학에 기초가 없는 사람으로서는 난망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다행히 일본어학에 기초가 없는 사람들도 어찌어찌 읽을 수 있게 친절하게 기술되었으므로, 나중에 백제 고도 공주 무령왕릉 근처를 쓸쓸히 서성이면서, 읽다가 멈추고, 읽다가 또 멈추기를 반복하더라도, 품고 다닐 만 하기에는 좋은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귀중한 연구성과를 번역해 낸 인천대학 일본 한자문화연구회의 빛나는 안목에도 치하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언어와 역사의 간격이 비록 엄청 크기는 하지만, 인천대학교 일본한자문화연구회의 약진이 크게 기대됩니다. “나의 한계는 내 언어의 한계다”라고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이 말했다지만, 공주 공산성(公山城)의 밤, 하얗게 밝히는 불빛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진기예 국사학자들의 연구를 담담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