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8세기 이중환 「택리지」에서 읽는 정신세계

뇌하수체 2013. 6. 29. 17:55

베를린의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 1712~1786)이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를 상대로 슐레지엔 전쟁(Die ersten beiden Schlesischen Kriege, 1740~1745)을 벌이고 난 후 조만간 벌어지게 될 「7년 전쟁(Seven Years' War; Siebenjähriger Krieg, 1756~1763)」을 대비하고 있었을 1751년,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 때 이중환이라는 학자가 「택리지(擇里志)」라는 흥미로운 책을 한문(漢文)으로 써냅니다.

 

택리지

이중환 저, 이익성 역, 을유문화사, 2006년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충청도관찰사, 예조참판 등을 지낸 부친 이진휴(李震休, 1675~1710)를 따라 다니며 18세기 조선 여러 곳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조선 후기 대표적인 남인(南人) 집안인 사천(泗川) 목씨(睦氏)와 혼인하여 대사헌까지 지낸 장인 목임일(睦林一, 1646~?)의 후광을 한때 보았다가 목호룡(睦虎龍, 1684~1724)의 고변(告變)사건(1724)에 휘말려 귀양길에 오르면서 그 후 행적은 불분명하다는 인물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18세기 경남 김해지방의 왜인(倭人)들의 생활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쓰시마섬(大馬島) 거주인들이 반(半)일본, 반(半)한국의 중개무역자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오키나와(류큐, 琉球)의 왕세자가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 끌려간 부친인 왕을 구출하기 위해 보물을 싣고 일본을 향했다가 제주도에 표류하여 제주목사에게 몹씁 짓을 당했다는 기록을 굳이 적었던 이유도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 세종특별자치시(편입지역)를 본향으로 했던 이중환이 자기 집안의 사당이 있었던 차령 이남 금강 이북의 지리(地理)를 산에 살기가 있다고 간단히 적어놓고 만 것이나, 평안도와 전라도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그 지역의 인심을 단정적으로 평가해 놓은 것이 어떠한 깊은 뜻이 있는 것인지는 좀더 들여다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기자동래설을 기정사실화 하고 명나라에 대한 보은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중환의 정신세계(精神世界)는 노론, 소론, 남인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쬐끔 슬퍼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