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steriale(봉사귀족)과 Zensuale(납세민)의 번역문제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께서 “ ‘번역에 들였던 그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했더라면’ 하는 회한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옮긴이의 말로 적고 있는 책 『중세 유럽의 코뮌 운동과 시민의 형성(크누트 슐츠 지음, 박흥식 옮김, 도서출판 길 2013년 3월 제1판 발행)』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한번쯤 눈길을 주어야 하는 번역서입니다.
옮긴이 박흥식교수는 “번역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에는 이 책의 독일어가 녹록치 않았던 점이나 옮긴이의 전문지식의 부족도 한몫했다”고 겸손하면서도, “인명과 지명의 경우 옮긴이는 카롤링 시대까지는 라틴어 표기와 발음을, 그 이후에는 현재 해당 지역의 발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하면서 “그렇지만 어떤 발음을 택해야 할 지 애매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적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독일어 혹은 라틴어로 인명과 지명이 씌어졌지만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Petrus Abelardus)는 프랑스식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élard)로, 지랄두스 캄브랜시스(Giraldus Cambrensis)는 영국식 웨일스의 제랄드(Gerald of Wales)로 바”꾼 번역도(책 pp.395~396)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봉사귀족(Ministeriale)'이나 ‘납세민(Zensuale)'의 번역에 대해서는, 옮긴이의 생각으로도 “흡족하지는 않지만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는 외국어를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서 번역어를 고집했다”며 적잖이 고심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합격점을 주기가 어렵습니다. “이후에라도 번역 용어나 번역 자체에 대해 제안을 해오면 귀 기울여 듣”겠다고 해도(책 p.397)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원저자 Knut Schulz가 책 제목을 “Denn sie lieben die Freiheit so sehr(자유를 너무 갈망하여)”라고 숙려하여 정했다는데(책 p.9), 번역서 제목을 학술논문 제목 처럼 바꾼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코뮌’ 하면 19세기 ‘파리 코뮌’ 생각을 우선 하게 되는데 중세말 11세기 무렵 19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기술하면서도 출판사는 ‘코뮌’이라는 표현을 책제목에 달고 싶었던 가 봅니다.
마인츠(Mainz) 아놀트(Arnold) 주교의 시체가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 도시의 묘지 위쪽 들판에 3일 동안 방치되어 조롱을 당했다.” (중략) “그들은 사망한 주교의 치아를 돌로 박살내버렸다”. 그와 더불어 분노한 마인츠인들이 대주교의 주검 앞에서 경멸조로 ”아직까지도 내 재산을 징발하고 싶니? 아직도 내 아들을 네 소유로 삼고 싶니?“라고 물었다고 책은 전합니다(책 pp.248~249).
(사진출처 : Wolfgang Pehlemann Wiesbaden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