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시작과 끝(by 카린 포이어슈타인-프라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도약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독일의 모래밭(Streusandbüchse) 브란덴부르크
“독일을 군국주의와 보수반동의 길로 이끌었던 프로이센을 소멸시킨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프로이센의 해체를 결정한 연합국 임시법률 46호(1947.2.25)는 이렇게 시작되며, 이로써 유럽의 후진국으로서 군사력을 키우고 정치를 안정시키며 강국의 반열에 올랐던 프로이센의 역사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프로이센이 완전히 사멸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동서독 통일 이후 연방정부와 의회가 본(Bonn)에서 베를린(Berlin)으로 이전하면서 사멸되지 않은 프로이센이 감지된다. 베를린에는 도처에 프로이센의 자취가 생생히 남아있다. 브란덴부르크문(門), 운터덴린덴, 돔, 샤로텐부르크성(城) 등 유물과 유적에는 프로이센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고, 그것들은 ‘군국주의와 보수반동’이라는 단 하나의 굴레로는 결코 포괄되지 아니한다. 그래서 19세기 초 프랑스의 여류작가 마담 드 스타엘(1766~1817)은 프로이센을 마치 야누스와 같이 두 얼굴을 가진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하나는, 군국주의적인 프로이센의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프로이센의 모습이다. 프로이센은 성립 당시부터 이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후진국 프로이센의 도약이 시작된 곳은 프로이센 지방이 아니라 브란덴부르크 지방이었다. 1701년에 프로이센 최초의 왕비가 되는 소피 샤로테가 하노버에서 태어나던 해인 1668년만 하더라도 프로이센 지방은 오늘날 폴란드 동쪽 국경과 발트해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먼 동쪽의 변방이라고 인식되었다. 프로이센 지방은 폴란드왕의 봉토(奉土)로서 1618년에 당시 독일 내에서 보잘 것 없는 지위를 가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帝侯)에게 귀속되었다. 오늘날의 베를린과 그 주변지역에 해당하는 브란덴부르크가 장차 주변국가를 위협하는 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은 17세기 초반 당시 아무도 없었다.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브란덴부르크가 처한 여건이 너무도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브란덴부르크는 유럽의 주요 무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위치하여 있었고 이렇다 할 부존 지하자원도 없어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었다. 모래를 함유한 토양 때문에 농업이 발달하기도 어려워서 양을 키우는 목축업을 영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이유로 브란덴부르크는 ‘독일의 모래밭’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스웨덴 등 노르만민족과 폴란드 등 슬라브민족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던 브란덴부르크 지방은 베를린으로부터 300여 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뉘른베르크 지방에 근거를 둔 호헨촐레른(Hohenzollern) 가문이 통치하면서 1415년 선제후의 지위를 얻는데는 성공하였으나 16세기 이전까지 독일 내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미미했다.
17세기에 접어들어, 정치 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면서 47세에 사망했던 무능한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1572~1619)가 통치하던 시기에 브란덴부르크 호헨촐레른 가문에 뜻밖의 호기가 찾아들었다. 1614년 라인강 하류의 클레버 공국과 북서부지방(북독일 베스트팔렌 주변)의 마르크 및 라벤스베르크 공국을 호헨촐레른 가문이 상속받게 된 것이다. 이들 지역은 농업이나 수공업이 발달한 부유한 지역이었으나 브란덴부르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에는 프로이센(지금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지방) 공국을 역시 상속에 의해 호헨촐레른 가문이 통치하게 되었다.
브란덴부르크의 호헨촐레른 가문이 프로이센을 지배하게 된 바로 그 해(1618년)에 신구교간의 종교전쟁인 30년전쟁이 발발하여 브란덴부르크는 재건을 엄두 조차 내지 못할 만큼 황폐해졌다. 신교도편에 가담한 스웨덴 군대가 브란덴부르크 전역을 초토화하여 브란덴부르크 인구는 전쟁 전 60만명에서 21만명으로 감소하였다. 당시 선제후 게오르그 빌헬름(1595~1640)은 너무도 무능했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했던 게오르크 빌헬름은 신교도측의 스웨덴군과 구교도측 황제군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브란덴부르크의 피해만 키웠고, 1640년 12월 임종하면서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엄청난 혼란상태를 유산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