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동독에서 보낸 나의 40년 (Günter de Bruyn)

뇌하수체 2010. 8. 26. 22:02

무엇을 쓸 수 있을까(Möglichkeit)

 

나의 어머니는 불행한 일을 당하면 늘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다리가 부러진 경우에는 ‘그래도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고, 식량이 부족한 때에는 기나긴 보릿고개의 곤궁함을 떠올리면서 ‘이 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쳐왔을 수 있었다’고 항상 위안을 삼으셨다. 어머니가 여든네 살이던 때 이미 여러 가지 노인병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때도 어머니는 그래도 아직 시력을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어머니의 사고방식을 나 또한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회고하는 나의 동독생활 40년은 나의 어머니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상대화하여 받아들이는 것처럼 실제와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투영되어 기록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 전에 그 보다 훨씬 더 나쁜 일이 이미 생겨있는 경우가 있다. 울브리히트(Walter Ulbricht, 1893~1973) 치하의 동독에서는 단지 자유가 박탈되는 것을 우려했었으나, 사실 그 이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시대에는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을 뻔 했던 것이 그런 경우였다. 나는 같은 시대 내 동년배들이 직면했던 불유쾌한 경험을 빠짐없이 가지고 있었다. 패전 이후에는 감옥에 갇혔었고 나의 옛 고향마을은 다른나라(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내가 장차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잃었을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를 잊고 살았다. 평정심을 찾기 위해 생활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감이 순식간에 밀려왔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탐욕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아집에 사로잡혀있을 것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삶과 사랑을 찾아가는 계획이나 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40년 동안 내 삶을 지배하다가 사멸한 동독의 정치권력은 결국 내 삶의 해피엔드를 기약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그 40년 세월에 대해 내가 극심한 회한을 품고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