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동프로이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뇌하수체 2010. 10. 11. 08:34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der Große, 1712~1786)가 왕세자로서 베를린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한창 배우고 있을 때 동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태어납니다. 칸트는 메멜란드(Memelland)에서 쾨니히스베르크로 이주한 부친 요한 게오르그 칸트(1683~1746)와 뉘른베르크에서 쾨니히스베르크로 이주한 가죽 수공업자 집안 출신 모친 안나 레기나(Anna Regina, geb. Reuter, 1697~1737)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식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 모친의 노력으로 칸트는 1732년 프리드리히 1세의 이름을 따 지은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준비학교(Collegium Fridericianum, Friedrichskollegium)에 입학하였고, 프리드리히 2세가 부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를 이어 왕위에 오르기 전 왕세자 신분으로 「반(反)마키아벨리론(論)」를 썼던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Universität Albertina)에 입학합니다.

 

File:Memelland 1923-1939.png

그림출처 : Matthead,  Memelland as occupied by Lithuania from 1923 to 1939

 

칸트는 1770년 46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정교수(논리학 및 형이상학)가 되는데 프리드리히 2세가 7년 전쟁(1756~1763)을 끝내고 베를린에서 내정에 주력하고 있던 때입니다. 프리드리히 2세가 임종한 해인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학장(Rektor)의 직을 맡았고 1787년에는 베를린 학술원(Berlin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정회원이 됩니다. 1781년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이 출간되었고, 1784년에 계몽이란 무엇인가(Was ist Aufklärung), 1788년에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그리고 1790년에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이 각각 씌여집니다. 칸트는 박봉에 시달리던 평교수 시절 당시 명문대학이었던 할레(Halle) 대학, 에어랑겐(Erlangen) 대학, 예나(Jena) 대학 등에서 당시 받고 있던 봉급의 3배 수준까지 제시하면서 교수직 초빙을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만 봉직하였으며 단 한번도 동프로이센 지방을 벗어나지 않고 생을 마쳤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다가 말년에 여동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을 마친 칸트는 여성을 혐오했던 사람은 아니라고 합니다. 두 번이나 결혼을 하려 시도했으나 끝내 연이 닿지 않았던 칸트는 훗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아내를 먹여살릴 만한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내를 먹여살릴 만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된 때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Da ich eine Frau brauchen konnte, konnt′ ich keine ernähren; und da ich eine ernähren konnte, konnt′ ich keine mehr brauchen)".

 

프리드리히 2세 사후 그의 조카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시절에는 칸트의 저작물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사상검열이 이루어졌는데 베를린 학술원 회원에서 물러난 1797년 칸트는 스웨덴의 린드블롬(Lindblom) 주교에게 보낸 한 편지(1793.10.13)에서 자신의 가계(家系)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프로이센-리투아니아 지역 틸지트(Tilsit)에서 살았었고 스코틀랜드 이민자 집안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는 스웨덴에 정착했고 나머지가 프로이센 메멜 지방에 정착해서 심프슨(Simpson), 맥클린, 더글라스, 해밀턴 등 성씨를 가지고 있으며 나의 할아버지도 그들 중 한사람으로서 틸지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Daß mein Großvater, der in der preußisch-litauischen Stadt Tilsit lebte, aus Schottland abgestammt sei: daß er einer von den vielen war, die am Ende des vorigen und im Anfang dieses Jahrhunderts aus Schottland, ich weiß nicht, aus welcher Ursache, in großen Haufen emigrierten und davon ein guter Teil sich unterwegs auch in Schweden, der Rest aber in Preußen, vornehmlich über Memel verbreitet hat, beweisen die dort noch bestehenden Familien der Simpson, (M)aclean, Douglas, Hamilton und anderer mehr, unter denen auch mein Großvater gewesen und in Tilsit gestorben ist, war mir gar wohl bekannt.)". 그래서 일부 문헌에서는 칸트가 스코틀랜드 이주자 집안 출신이라고 기술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20세기 초 모르텐센(Mortensen) 등의 연구에 의하면 칸트의 조부는 틸지트에 거주한 적이 없고 스코틀랜드 이주민도 아니며 스코틀랜드 이주민과 통혼을 했던 발크해 원주민 쿠렌(Kuren, Curonian) 사람입니다. 쿠렌사람들은 독일기사단이 동프로이센 지방에 오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그 지방 토박이들 입니다.

 

File:Baltic Tribes c 1200.svg
(그림출처 : en:user:Map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