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3제국 이후 독일인들의 정신세계(by Herfried Münkler)

뇌하수체 2011. 1. 13. 14:23

1945년 5월 7일과 9일, 역사적으로 유례(類例)가 없는 과정을 거쳐 제3제국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bedingungslose Kapitulation)’을 함으로써 독일의 주권 뿐 아니라 독일역사의 신화(Mythen)도 사라졌다. 7년전쟁(1756~1763) 당시 궤멸직전의 프로이센이 기사회생 할 수 있었던 「브란덴부르크 가문의 기적(Mirakel des Hauses Brandenburg)」은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4.30)와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5.1)의 희망과 달리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4.12)가 서거한 후에도 안티-히틀러-연합(Anti-Hitler-Koalition)은 붕괴되지 않았던 것이다. 1944년과 1945년의 독일은 30년전쟁(1618~1648) 당시의 독일처럼 처참히 파괴되었고, 1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이후에도 유지했었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가 건설한 독일제국(Reich)의 ‘힘(Macht)과 영광(Herrlichkeit)'은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붉은수염 황제(Kaiser Rotbart)’의 귀환에 대한 19세기 독일인들의 꿈은 나치독일의 소련 침공 작전명 ‘바바로사(Barbarossa)’로 인해 무참히 좌절되었고 지그프리트(Siegfried)와 니벨룽겐(Nibelungen)의 희생정신을 기려 줄 국가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독일의 모든 가정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아들, 형제, 또는 아버지를 전쟁터에서 잃은 후 독일인들은 ‘희생’이라는 말에 이제 진저리를 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온 나라가 마치 거대한 장례식장(Tötenhaus)인 듯 보였다. 히틀러가 유언으로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다고 베를린 벙커(Berliner Bunker)로부터 통보를 받은 해군참모총장(Großadmiral) 카알 되니츠(Karl Dönitz, 1891~1980)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이제 끝내자. 우리는 영웅적으로 충분히 싸울만큼 싸웠다. 이제는 독일민족의 존립을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자가 없어야 한다.”

 

Datei:Bundesarchiv Bild 183-V00538-3, Karl Dönitz, Adolf Hitler.jpg
되니츠와 히틀러(1945년)

 

 

1950년대 중반 서독과 동독이 재무장을 준비하던 시기에 1953년 6월 17일 사태 이후 주민통제를 강화했던 동독 보다는 서독에서 더 격렬한 반대시위가 있었다. 1950년대 서독에서의 재무장 반대시위는 1967년부터 1969년 사이 대학생들의 소요와 1980년대 초반 나토(NATO)의 군비확장에 대한 반대시위와 비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서독에서는 포스트-영웅사회(post-heroische Gesellschaft)가 구현되어 양심적 이유로 인한 병역거부자(Wehrdienstverweigerern) 숫자가 늘어났고, 서독과 달리 프로이센의 전통을 일부 공식 승계한 동독정부에서 조차 동독주민들의 포스트-영웅시대적인(postheroisch) 또는 반(反)영웅시대적인(antiheroisch) 성향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980년대 이후 동독정부가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교회를 중심으로 이를 견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적어도 오늘날 독일에서 니베룽겐(Nibelungen)의 영웅들은 "칼 대신 쟁기(Schwerter zu Pflugscharen)"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는 독일인들의 유토피아적(mythisch-utopisch) 여망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