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의 사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by K.E.Vehse)
제2대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프리드리히 1세와 하노버의 소피 샤로테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었다. 1688년 8월 14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인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세상을 떠난 지 약 3개월이 지난 때였다. 프리드리히 1세가 어린 시절 병약하고 유순했던 것과 정반대로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매우 튼튼한 신체를 타고났으며 고집이 셌고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어머니 소피 샤로테 왕비나 외할머니 소피 부인은 활발하고 말 잘 안듣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애지중지했다. 외할머니 소피 부인은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다섯 살일 때 베를린을 방문했었고 손자가 외가인 하노버에 와서 지내도록 했다. 그러나 외갓집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섯 살 위인 사촌 게오르그(1683~1760)와 사이좋게 지내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촌 게오르그는 나중에 영국왕 조오지 2세(재위 1727~1760)가 되었는데 어린 시절 하노버에서 티격태격했던 두 사촌형제는 각각 왕이 된 후 죽을 때까지도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카롤리너(Caroline von Ansbach)와 결혼한 게오르그를 항상 “춤선생인 내 사촌”이라고 불렀고 게오르그는 반대로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하사관(下士官)인 내 사촌”이라고 지칭했다.
일찌감치 ‘하사관’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에 걸맞게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어렸을 때부터 위태로운 행동을 종종 감행하곤 했다. 마르타(Martha von Montbail)라는 프랑스 여성으로부터 교육을 받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언젠가 신발에 붙이는 은제(銀製) 버클을 삼키는 바람에 온화한 성품의 프랑스인 가정교사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다행히 하제(下劑)를 써서 배출해내기는 했다. 언젠가는 가정교사의 벌을 피하기 위해 창문 밖에 매달려 벌을 받게 된다면 창문 아래로 떨어져버리겠노라고 위협을 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1세가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것을 좋아했던 것과 달리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에 질색이었다. 화려하게 금빛으로 장식한 궁정용 실내 가운을 난로에 집어던져 태어버리기도 했다. 그 대신에,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하루라도 빨리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린 군인의 얼굴이 되고 싶어서 얼굴에 오일을 바른 채 햇볕을 쪼이곤 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어렸을 때부터 저항정신(抵抗精神)의 진수(眞髓)를 드러내 보였다. 무엇인가로부터 강요받거나 억압감을 느낄 때 수지타산(收支打算)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아니하고 우선 감연히 맞서서 저항하는 많은 인물군(人物群)의 원형(原型)이 프리드리히 빌헬름에게서 발견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어머니 소피 샤로테 왕비는 학문적인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들에게 최소한의 교양이라도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의 처소로 아들을 불러 읽기를 시키고 읽은 내용에 대해 토론을 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오직 두 가지 것에만 열정을 보였다. 하나는 군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돈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용돈을 모아 소년시절에 이미 자신의 독자적인 부대를 창설하였고 그 부대를 직접 지휘하기까지 했다.
16살이던 1704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부친으로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을 여행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소피 샤로테 왕비가 아들의 시야를 넓히는데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여행이었다. 왕비는 사랑하는 외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어쩌면 이것이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을 가졌다. 아들이 떠나던 날 왕비는 책상에 앉아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버렸구나(Il est parti)"라고 적었다. 1705년 2월 1일 소피 샤로테 왕비는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행 배편을 예약해두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급히 베를린으로 되돌아왔다. 소피 샤로테 왕비의 갑작스런 죽음은 프리드리히 빌헬름이나 프로이센에 대해 이중(二重)의 불행이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외국여행을 계속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어머니가 꿈꾸는 나라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고 자유로운 나라 네덜란드와 영국에 머물렀다면 그의 정신도 보다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그는 외국여행을 해보지 못하고 왕이 되었다. 전쟁을 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외국에 가는 것만으로는 정신세계가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