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하이디 크룸(Heidi Klum)과 『국화와 칼』

뇌하수체 2013. 3. 2. 01:54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74년 2월 제1판 1쇄 발행, 2009년 3월, 제5판 3쇄 발행)』의 역자들인 김윤식교수와 오인석 교수는 그들이 30대 후반 나이였을 1970년대 초 일본 도쿄대학에서 연수하며 만난 것을 계기로 이 책을 공동으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책 p.16). 당시 젊었던 역자들은 “특히 이 책의 정수는 계층제도(hierarchy)의 분석에 있다. 그 계층제도가 근대사회로 넘어올때 어떠한 질서와 충돌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고찰은 제3장 ‘메이지유신 明治維新’ 속에 선명히 드러나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책 p.15).

 

 

김윤식교수(1936~ ) [사진출처 : 한겨레신문]

 

 

한국 인문학계 원로 두 분 역자들이 1970년대 이 책 초판 발행 당시의 평가를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2013년에 읽는 이 책의 미덕은 사실 제3장 메이지유신 부분 보다는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pp.43~69)과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pp.391~414)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 책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9월 미국 정부의 위촉으로 “일본의 산 속 요새에서 최후까지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일본인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하는가? 국제평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 같은 혁명이 일본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는가? 아니면 일본 국민은 멸종시켜야 하는가?”(책 p.22) 하는,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섬뜩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이 책의 연구를 시작했고, 당시 독일군 포로와 일본군 포로의 태도에 관하여 매우 흥미있는 관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의 천황 숭배가 나치독일의 하일 히틀러(Heil-Hitler) 숭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을 소개하고(책 p.56), “프로이센적 강권주의가 가정생활 속에, 또 일상의 시민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힌 독일”과는 다른 강화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책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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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1937년)의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

 

 

역자들(김윤식․오인석)이 루스 베네딕트의 “절대적인 스승”이라고 소개한(책 p.15)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 1858~1942)는 독일 베스트팔렌 민덴(Minden) 지역 출신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히틀러 집권 훨씬 이전인 189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프란츠 보아스로부터 문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 Kulturrelativismus)를 배웠던가 봅니다. 1946년 루스 베네딕트의 원전이 출간된 지 70년이 되어가면서 고전(classic)의 반열에 올랐다고 짐작되는 이 때, 이 책에 대해 애써 침묵하려던 독일인들에게 수치 또는 모욕을 줄 법한 사건이 독일 수퍼모델 하이디 크룸(Heidi Klum, 1973~ )의 옷차림 때문에 발생한듯 합니다.

 


Um dieses Outfit geht es: Model Heidi Klum bei einer Oscar-Party

 

하이디 크룸(2013.2.24) [사진출처 : AP/DPA]

 

 

가슴을 확 드러낸 마흔살의 아줌마 하이디 크룸의 의상을 논평하면서 러시아계 유태인 출신 미국 코미디언 조안 리버스(Joan Rivers, 1933~ ) 할머니가 "나치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냈을 때를 생각나게 할 만큼 화끈하다(Das letzte Mal, als jemand aus Deutschland so heiß ausgesehen hat, war, als sie Juden in die Öfen geschoben haben)."고 말했기 때문입니다(Die Welt 신문, 2013.2.28). 조안 리버스는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했다고 하는데, 조안 리버스의 말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을 모욕한 것인지, 아니면 독일인들을 모욕한 것인지는 적어도 향후 10년 이내에는 결론내리기가 어렵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