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파우스트(Dr. Johann Georg Faust)와 악마의 계약 (by Herfried Münkler)

뇌하수체 2011. 7. 20. 22:17

파우스트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많은 것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정설(定說)인지는 오늘날까지도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정설’이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을 일제히 추종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의가 분분하다. 어떤 이는 파우스트에게서 우울한 성격을 가진 회의주의자인 사색형 인간(Grübler)의 모습을 본다. 다른 이는 파우스트에게서 초자연적인 힘까지 추구하는 신념에 가득 찬 행동형 인간(Tatmensch)의 모습을 본다. 어떤 이는 파우스트가 악마적인 힘에 빠져들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는 파우스트가 종교의 교조주의적 속박을 끊고 스스로 구도의 길을 찾는 근대적인 인간형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저한 견해 차이의 기저에는 파우스트가 악마와 맺은 계약으로 말미암아 대체 어떤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놓여있다.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맺음으로서 결국 악마에게 이용당했던 것일까, 아니면 거꾸로 파우스트가 악마를 이용하여 낙원으로 가는 길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만일 악마가 자기구원의 길을 찾는 파우스트를 도와준 것이라면 파우스트는 종교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성적 인간인 회의주의자로서 근대적 인간형이 되며 스스로 이 세계를 철저히 탐구하고 결국은 이 세계를 정복하는 현대인의 선구자가 되는 셈이다.

 

파우스트라는 인물형은 브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 1920~1996)가 “신화 만들기 작업(Arbeit am Mythos)”이라고 지칭한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 브루멘베르크에 의하면 신화(神話)란 전체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처음에 있었던 핵심적인 줄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1775년 초기작품인 파우스트(Urfaust)에서부터 1831년 8월 희곡 파우스트(Faust. Der Tragödie zweiter Teil) 완성시까지 일생을 파우스트에 매달린 괴테의 경우는 파우스트 신화 만들기 작업 과정에서 단순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괴테의 작품이 없었더라면 파우스트 이야기는 독일의 국민신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학자 트라이치케(Heinrich Gotthardt von Treitschke, 1834~1896)는 1879년 출간되어 당대를 풍미한 저서 「19세기 독일사(Deutsche Geschichte des 19. Jahrhundert)」에서 독일인들에게는 “편안하게만 받아들여지는 친근한 마법(anheimelnder Zauber)"을 ”완전히 이해하는 외국인은 아직까지 없다“고 단언하면서 괴테의 파우스트가 ”독일역사를 표상하는 한 상징“이라고 하였고 ”파우스트에는 숲과 들판의 신령들을 숭배하던 독일의 옛 전통에서 출발하여 전래의 미신, 독일여성의 감수성, 대학생의 유머, 군인의 심리 그리고 정신의 고양 등 독일인들의 삶 전체가 묘사되어 있다“고 극찬했다. 비인 국립극장(Wiener Burgtheater) 연극감독을 지낸 시인 겸 저널리스트 딩겔슈테트(Franz von Dingelstedt, 1814~1881)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독일인들에게 제2의 성경(zweite Bibel unserer Nation)"이라고 하면서 “독일 저작물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das Allerheilste unseres nationalen Schrifttums)”이라고 평가했다. 그림형제 중 한 명 빌헬름 그림(Wilhelm Carl Grimm, 1786~1859)의 아들인 역사가 헤르만 그림(Herman Friedrich Grimm, 1828~1901)은 1876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강연에서 “파우스트와 그레첸(Gretschen)이 있는 이상 독일문학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앞서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파우스트는 “독일의 학자나 지식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민족영웅의 모습(die Gestalt eines Nationalhelden)”으로 형상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