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도에 벨테브레와 하멜이 왔을 때

뇌하수체 2011. 11. 19. 22:57

 

벨테브레(Jan Jansz. Weltevree)가 제주도에 표착한 것은 1627년의 일이고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1653년에는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이 제주도 “대정현 지방 차귀진 하의 대야수 연변”에 표착했다고 제주목사를 지낸 야계(冶溪) 이익태(李益泰)가 남긴 문집 『지영록[地瀛(바다 영)錄, 1695년]』에 수록된 「서양국표인기(西洋國漂人記)」가 전한다고 합니다[신동규, 「하멜의 표착과 제주」, In :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제주』(국립제주박물관 편, 서경문화사, 2011년) p.150]. 1627년은 인조 5년이고, 1653년은 효종 5년입니다.

 

Bestand:Jan Jansz Weltevree De Rijp.jpg
네덜란드 De Rijp의 벨테브레(박연,朴淵/朴燕)상(像) [그림출처: MartinD)]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1595년 출생, 沒年未詳)는 인조(仁祖, 1595~1649) 재위(1623~1649) 시 정묘호란(1627.1~1627.3)이 일어난 해에 동료 기스베어츠(Direk Gijsbertz) 및 페어베스트(Jan Pierteree Verbaest)와 함께 제주도에 표착한 후 조선에 귀화하여 박연(朴淵/朴燕)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훈련도감에서 근무하다가 동료들과 함께 병자호란(1636.12~1637.1)에 참전하였다고 「하멜 표류기(네덜란드어 원제 : 1653년 바타비아발 일본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가 전합니다. 효종(孝宗, 1619~1659)이 재위(1649~1659)하고 있던 1653년 제주도에 표착하여 조선에 억류되었다가 1666년에 일본으로 탈출한 하멜의 ‘표류기’(하멜 보고서, 난선제주도난파기, 蘭船濟州道難破記)는 14년 동안(1653~1666) 조선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관련 웹사이트 http://www.hendrick-hamel.henny-savenije.pe.kr/indexk2.htm, http://www.willi-stengel.de/hendrik_hamel.htm 참조).

 

 

 

17세기 프로이센과 조선의 군왕들

프로이센(브란덴부르크)

조 선

왕/선제후

관계/재위기간

관계/재위기간

요한 지기스문트

(1579~1619)

7남5녀중 장남

1608~1619

광해군

(1575~1641)

선조 14남11녀중 2남

1608~1623

게오르그 빌헬름

(1596~1640)

4남 4녀중 장남

1619~1640

인조

(1595~1649)

선조의 손자

1623~1649

프리드리히 빌헬름

(1620~1688)

2남2녀중 장남

1640~1688

효종

(1619~1659)

인조 6남1녀중 2남

1649~1659

현종

(1641~1674)

효종 1남7녀중 장남

1659~1674

프리드리히 1세

(1657~1713)

9남4녀중 3남

1688~1713

숙종

(1661~1720)

현종 1남3녀중 장남

1674~1720

 

 

 

 

조선의 인조 임금이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으로 치욕를 겪고 있을 때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邊境伯) 겸 선제후(選帝侯) 게오르그 빌헬름(Georg Wilhelm, 1595~1640, 재위 1619~1640)은 「30년 전쟁(Der Dreißigjährige Krieg), 1618~1648」에 잘못 대처하면서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1620년 여동생 마리아 엘레오노라(Maria Eleonora, 1599~1655)와 스웨덴왕 구스타프 아돌프(Gustav II. Adolf, 1594–1632)의 혼인을 성사시킨 게오르그 빌헬름은 신구교도 국가간의 전쟁이었던 30년 전쟁에서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했으나 1627년 카톨릭군대의 자국내 주둔을 인정했고 1628년에는 발렌슈타인(Wallenstein, Albrecht Wenzel Eusebius von Waldstein, 1583~1634) 군대의 베를린 입성을 용인합니다.

 

 

스웨덴왕 구스타프 아돌프 왕비 마리아 엘레오노라[그림출처 : Fernan]

 

 

카톨릭의 발렌슈타인 군대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신교도측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던 1630년 스웨덴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신교도편에서 참전하기로 하자 게오르그 빌헬름은 1631년 매제인 구스타프 아돌프와 비공식적인 연대를 맺고 신교도편에 가담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카톨릭의 틸리(Johann t’Serclaes von Tilly, 1559~1632) 군대에게는 브란덴부르크 서쪽 지역을 빼앗기고 독일지역으로의 영토확장을 도모하던 스웨덴군에게는 브란덴부르크 동쪽 지역을 점령당하는 딱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1633년 브란덴부르크-작센 연합군이 발렌슈타인에게 항복을 한 후에도 브란덴부르크는 스웨덴과의 연대를 계속 유지했지만 1635년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카톨릭편에 가담하게 됩니다. 조선의 인조 임금이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1637년 게오르그 빌헬름은 베를린을 떠나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로 거처를 옮겼고 1640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1618년 2만명 수준이던 베를린 인구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전쟁이 끝났을 때 고작 6천명이었습니다.

 

 

 

Datei:Gustav II Adolf porträtterad av Jakob Elbfas ca 1630.jpg
스웨덴왕 구스타프 아돌프(1630년경)[그림출처 : ¡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