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프로이센의 이름으로

뇌하수체 2010. 7. 14. 19:32

 공국(公國, dukedom, duchy, Herzogtum)이란 공작(duke, Herzog)이 다스리는 영역(영토, 주민)을 말한다. 왕권이 일찍이 확립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공작(公爵)은 귀족 작위의 하나로서 왕의 신하(臣下)에 지나지 않았으나 강력한 통일국가 성립이 늦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공작은 왕(King) 보다 비록 지위는 낮으나 독립적으로 주권(sovereignity)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공작과 달리 백작(earl, count, Graf)은 배타적인 지배권을 가지지 못했던 존재였으나 변경백(邊境伯, Markgraf)이나 팔츠백(伯)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은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공작이나 변경백 등 주권을 가진 통치자들를 총칭하여 제후(諸侯, Fürsten)라고 부르며 이들 제후 가운데 독일왕 또는 독일황제 선출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을 선제후(選帝侯, Kurfürsten)라고 불렀다.

 

 프로이센 지역에 공국(公國)이 처음 세워진 때는 1525년이다. 프로이센은 본디 지역 명칭으로 발트해 종족의 하나인 프루세인(人)들이 거주하던 곳을 지칭하는데 오늘날 폴란드의 그단스크(단치히) 동쪽부터 리투아니아까지의 발트해 연안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프로이센공국(Duchy of Prussia) 성립 당시 프로이센 지방은 폴란드왕의 직할지인 서(西)프로이센과 독일기사단(Deutscher Orden)이 통치하는 동(東)프로이센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독일기사단은 제3차 십자군전쟁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만들어진 야전병원에서 유래하여 1198년에 결성되었고 1226년 폴란드왕의 요청으로 발트해 연안의 이교도(異敎徒)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프로이센에 왔다.

 

 프로이센의 독일기사단은 1303년부터 100년이 넘게 리투아니아와 싸우며 프로이센 지방 전역을 석권하였으나 1410년 이후에는 폴란드와 단치히 등 자치도시 연합군에게 차츰 밀리면서 동프로이센 지역으로 그 지배영역이 줄어들었다. 리투아니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을 명분으로 하여 폴란드가 프로이센 지역 독일기사단의 활동을 종식시키려는 외교적 공세를 강화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폴란드왕을 두둔함에 따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조언을 받은 프로이센 독일기사단의 집정관 알브레히트(Albrecht I. von Brandenburg-Ansbach)는 루터파 개신교를 받아들이면서 종교적 결사체였던 기사단을 통치조직으로 세속화(世俗化)하고 공국임을 선포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프로이센공국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독일기사단의 본부에서도 프로이센공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로이센공(公) 알브레히트는 프로이센공국이 폴란드왕의 봉토(封土)에 속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폴란드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1618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프로이센공국의 통치자 지위를 상속받았을 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한편으로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하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邊境伯)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폴란드왕에게 충성의무를 가지는 프로이센공(公)이라는 두 개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프로이센공(公)으로서 폴란드왕에게 부담해야 했던 의무는 1657년 벨라우(Wehlau) 조약에 의해 비로소 해소되었다. 당시 스웨덴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폴란드의 동맹국으로 브란덴부르크가 참전하는 대가로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폴란드왕에게 얻어낸 이익이었다.

 

 1701년 빈(Wien)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프리드리히 1세가 확보한 프로이센왕(王) 지위는 기존의 프로이센공(公) 지위가 승격된 것일 뿐이었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지위에 변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센 왕국은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의 일원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프로이센 왕국을 1786년까지도 승인하지 않았던 로마교황(敎皇)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邊境伯)’이라는 호칭만 사용했었다. 또한 당시 프로이센 지방에는 폴란드왕이 직할하는 서(西 )프로이센이 있었으므로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프리드리히 1세에게 프로이센의 왕위를 승인해주면서 ‘King of Prussia’가 아니고 ‘King in Prussia’라고 표기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1772년 제3대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2세가 제1차 폴란드 분할에 의해 서프로이센 지방을 폴란드로부터 차지한 후에 비로소 ‘King of Prussia(König von Preußen)’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독일적(非獨逸的)인 이름 ‘프로이센’이 베를린의 호헨촐레른 가문이 다스리는 국가의 이름으로 서서히 자리를 굳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