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와 쇄국정책(Abschlusspolitik)

뇌하수체 2013. 9. 22. 04:25

 

미국 일리노이 대학 로널드 코비(Ronald Koby) 교수가 쓴 흥미로운 책 『일본 근세의 ‘쇄국’이라는 외교(허은주 옮김, 도서출판 창해, 2013.2)』에는 ‘쇄국정책’이라는 번역어가 탄생하게 했던 독일사람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 1651~1716)가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책 pp.100~102).

 

독일 리퍼(Lippe) 지방 출신 엥겔베르트 캠퍼가 스웨덴 왕실 사절단의 일원으로 러시아와 이란을 방문하기 위해 스톡홀름을 떠난 것은 1683년 3월입니다. 1680년대는 오늘날 독일 북부지방 일부가 스웨덴 영토에 속했고 브란덴부르크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Der Große Kurfürst Friedrich Wilhelm von Brandenburg, 1620~1688)이 스웨덴과 북방전쟁(Nordischer Krieg, 1674~1679)을 벌인 직후입니다. 루터파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아들이었던 캠퍼는 스웨덴에서 독일 작센지방 출신 국제법학자 사무엘 푸펜도르프(Samuel Freiherr von Pufendorf, 1632~1694)를 알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스웨덴왕실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카스피해를 건너 이란을 방문한 캠퍼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를 거쳐 1690년 9월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였습니다. 캠퍼가 남아프리카를 거쳐 암스테르담으로 되돌아온 것은 1693년 10월이었습니다.

 

로널드 토비 교수가 쓴 이 책은 1629년 후금의 위협을 받고 있는 조선에 일본이 원군파견을 제안하였다는 점(책 p.159), 청에 대한 명 유신의 저항시 군사적 개입을 진지하게 검토하였다는 점(책 p.170), 17세기에 일본이 페루, 멕시코와 함께 세계 3대 은 생산국이었다는 점(책 p.171) 등 흥미진진한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옮긴이 허은주 선생의 말처럼 “일본은 분명히 동아사아에 대해 문호를 닫지 않았다”는 로널드 토비의 지적이 의미하는 바를 “신중하게 음미해 봐야 할 것”(책 p.372)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