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압력에 밀린 남한강 유역에 거주하던 말갈의 일부집단은 속리산 동쪽의 보은‧옥천‧영동과 경상도 상주 방면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백제에 맞서 소백산맥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일부가 경주지역으로 진출하여 김씨족단(金氏族團)이 되었다. 말갈은 고구려의 남진 공략이 본격화되면서 백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고구려는 영서 말갈지역의 요충지에 성곽을 축조한 후 신라와 백제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였다. 영서 말갈은 예병(濊兵)이 백제 공격의 첨병으로 동원되는 등 예속이 심화되었다.“(책 p.387)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문안식 교수의 노작 『요하문명과 예맥(도서출판 혜안, 2012.12)』에 경의를 표합니다. A.D. 500년 이전의 한반도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작금 국정교과서 논쟁에 휘말린 실망스런 우리 역사학계에 대한 기대를 다시금 걸게 되는 희망적인 징표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문헌사료를 총동원하여 치밀하게 논증한 문 교수의 노작이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는지 여부는 미정(open)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국청동기학회에서 펴낸 『한국 청동기시대 편년(서경문화사, 2013.5)』에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프로이센(독일)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가 금과옥조로 삼았던 바 “그 시대에 진실로 어떠했던 것인지(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밝히는 노력, 대한민국 역사학자들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예맥의 한반도 중남부지역 이주 시기 왜(倭)는 어떠했는지, 예컨대 그것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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