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쟁이 끝나고(1763.2.15, Frieden von Hubertusburg) 6년이 지났을 즈음 프리드리히 2세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이자 신성로마제국황제인 요세프 2세와 두 차례(1769.8.25, 1770.9.3) 회동(會同)을 가졌다. 요세프 2세(1741~1790)는 1765년 부친(Kaiser Franz Stephan von Lothringen)이 사망한 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위를 승계하였고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공동으로 통치를 하고 있었다. 젊고 명민했던 요세프 2세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프로이센과 동맹을 맺어두고자 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젊은 요세프 2세의 장래(將來)를 매우 밝게 평가하였으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전쟁에 가담하는 것은 피하고자 했다.
당시 러시아는 에카테리나 2세(1729~1796)가 폴란드왕 스타니슬라브(Stanislaus August)와 내연관계(內緣關係)를 유지하면서 사실상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지배에 반발하는 폴란드 귀족연합군을 지원하는 오스만투르크와 전쟁(1768~1774)을 벌이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가 오스만투르크를 밀어내면서 세력을 확장해오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러시아가 오스트리아 동쪽국경까지 다가오는 것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용인(容認)할 수 없다고 천명(闡明)하였으며 이런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동쪽 국경 주둔군의 군비를 강화하고 있었다.
러시아 역사상 유일하게 여제(女帝)이면서 대제(大帝)의 칭호를 가지는 에카테리나 2세는 프로이센 군대를 지휘했던 안할트-체업스트(公)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Christian August, Fürst von Anhalt-Zerbst, 1690~1747)의 딸로서 프로이센 영역이었던 오더강(江) 하구 스제친에서 태어났으며 결혼 전 이름은 소피 아우구스테 프리데리케(Sophie Auguste Frederike)였다. 소피 아우구스테 프리데리케는 1745년 북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 출신의 카알 페터 울리히(Karl Peter Ulrich von Schleswig-Holstein-Gottorf)와 결혼하였는데 카알 페터 율리히는 표트르대제(1672~1725)의 외(外)손주사위로서 이모(姨母)인 엘리자베타 황제(Jelisaweta Petrowna Romanowa, 1709~1762)로부터 황위를 물려받아 표트르 3세(1728~1762)로 등극하였다. 표트르 3세는 프리드리히 2세를 깊이 존경하여 7년전쟁(1756~1763)이 계속되던 1762년 엘리자베타 황제가 사망한 직후 프로이센과 휴전협정을 맺었으며 1만 5천명의 지원군까지 제공하였다. 그러나 표트르 3세는 제위 후 불과 6개월만에 암살을 당했고 에카테리나 2세가 제위를 이어받았다.
프리드리히 2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대립을 중재하기 위해 동생인 하인리히 왕자(Friedrich Heinrich Ludwig von Preußen, 1726~1802)를 세인트 페터스부르크의 에카테리나 2세에게 보냈다. 때마침 오스트리아가 적법한 청구권을 행사하여 폴란드 국경지방 일부를 점령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에카테리나 2세는 폴란드 분할에 찬동하는 의미로 하인리히 왕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폴란드에서는 욕심나는 것이 있을 때는 그저 몸을 구부려 집어들기만 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빈(Wien)이 폴란드 영토 일부를 가져가려면 다른 이웃나라들도 똑같이 가져가야 할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고받은 프리드리히 2세는 폴란드영토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일정부분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양국의 전쟁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제1차 폴란드분할(1772)로 폴란드는 영토의 30%와 인구의 35%를 잃었다. 프로이센은 이 때 차지한 지역을 서(西)프로이센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프리드리히 2세의 칭호도 'King in Prussia'에서 ‘King of Prussia'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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